(28) 우리나라 기업들이 실리콘밸리를 배워야 할까?

[실리콘밸리를 그리다] (28) 우리나라 기업들이 실리콘밸리를 배워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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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리콘밸리를 그리다 팀이 브런치에 게재한 글을 편집한 뒤 모비인사이드에서 한 번 더 소개합니다

실리콘밸리의 문화가 탄생한 이유

위계 조직도 처음에는 모든 직원이 평등했다.

지금까지 역사를 통틀어 자본주의의 거의 모든 기업은 최소 비용으로 최고의 생산성을 뽑아내기 위해 직원들에게 최소의 연봉을 주려고 노력하고 최대의 노동 시간을 확보하려고 노력했다. 그리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것이 자본주의의 속성이라고 생각하였다. 그렇게 가혹한 세상을 만드는 자본주의는 필시 자멸할 것이라 생각하고 공산주의와 사회주의가 대두되기도 하었다.

그런데 자유주의적 자본주의의 극한에 있는 실리콘밸리는 어찌 보면 이상적이라고 할 수 있는 체제를 만들었다. 구글, 페이스북, 애플, 에어비앤비, 우버 등 실리콘밸리의 기업들은 전 세계의 돈을 다 빨아들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높은 이윤을 내는 기업을 만들었다. 그럼에도 직원들은 입사 때부터 억대 연봉을 받고 주식을 통해 회사의 이윤을 직접적으로 공유한다. 실리콘밸리에서 20-30대의 직원이 백만장자가 되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게 되었다. 그렇다고 매일매일 야근을 해야 하는 것도 아니다. 여유롭게 일하고, 저녁에는 가족과 시간을 보내고 주말에는 일에 신경도 안 쓴다.

위계질서가 중요한 제조업 기업이든 역할 중심의 하이테크 기업이든 처음에는 모든 직원이 존중받고 비슷한 수익 분배를 받는다. 5명 내외의 창업자들은 모두 다 회사의 주인이고 회사가 대박 나면 그들 모두가 큰 수익을 올린다. 당연히 서로 존중하고 많은 것을 배려한다. 그런데 창업 다음 단계부터 제조업 기업과 하이테크 기업은 문화가 상당히 달라진다.

전통적인 제조업 기업은 많은 수의 교육 수준이 높지 않은 노동력을 필요로 한다. 전문가가 아니라 단순한 일을 반복하고 시키는 일을 잘 할 사람이 필요하다. 특히 다른 많은 경쟁사들과의 경쟁에서 살아남으려면 최소한의 임금으로 최대한의 노동력을 이용할 수 있어야 한다. 수천 명씩 수만 명씩이나 되는 교육 수준도 높지 않은 노동자들과 그들보다 교육 수준이 매우 높은 창업자들은 노동자들과 굳이 이야기를 많이 하지 않아도 된다. 아니 오히려 많은 이야기를 하는 것은 그들의 귀한 시간을 낭비하는 꼴이 된다. 그래서 오직 “착한” 임원들만 직원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인다. 그렇지만 그렇다고 해서 회사의 중요한 의사결정이 그러한 소통으로 인해 바뀌거나 하는 일은 별로 없다.

실리콘밸리의 하이테크 기업은 그 반대이다. 창업자들이 아무리 뛰어나도 그들이 하는 사업은 각 영역의 석사 이상의 전문가들을 필요로 하는 사업들이다. 그래서 스타트업의 창업자들은 자신의 프로덕트에 맞추어 자신보다 뛰어난 전문가들을 모셔온다. 실리콘밸리 기업들이 지원자들을 면접하는 역할을 하는 직원들에게 늘 하는 말이 “당신보다 뛰어난 사람만 합격시켜 주세요.”이다. 내 다음에 들어올 사람은 나보다 더 뛰어난 사람들이다. 나보다 실력이 부족한 사람은 신규 입사할 수가 없다.

그러한 환경에서 신입 사원을 무시하거나 그들에게 이래라저래라 하는 것은 매우 어색한 일이 된다. 모두가 다 뛰어난 전문가들이기 때문에 최고의 수준으로 대우를 하고, 그들의 전문성을 최대한 활용하기 위해 일을 시키는 것이 아니라 프로젝트를 맡아달라고 부탁한다. 이러한 상황에서는 위에서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신입 직원이어도 각 전문가가 결정을 내리는 것이 더 자연스러워진다. 그리고 높은 연봉, 자유로운 출퇴근 시간, 집에서 일해도 되는 근무 환경, 심지어 전 세계를 돌아다니면서 원격 근무를 하는 디지털 노매드도 자연스럽게 가능해진다.

우리나라의 기업들의 문화가 왜 문제가 되기 시작하였을까?

우리나라에 소프트웨어 산업이 필요하게 되었다.

2000년대에 들어서면서 우리나라의 기업들은 더 이상 나보다 교육 수준이 낮은 사람을 뽑을 수가 없게 되었다. 세계적인 기업들이 된 우리나라의 기업들은 세계 최고의 전문가를 뽑기 시작하였다. 기존의 임직원들이 신입사원들보다 뛰어난 사람들이 아니게 된 것이다. 위계질서를 중요시하고 존중하는 것이 당연한 우리나라의 문화에서 이러한 변화는 많은 문제점을 야기하기 시작하였다.

우선 위에서는 지금까지 하던 대로 정보를 제한하였다. 신입 사원들은 아는 것이 가장 적은 직원들이고 윗사람들은 알기 쉽게 자신이 아는 모든 정보를 전달해서 스스로 결정을 내리기 쉽게 해 주는 대신 정보를 제한하고 이를 통해 자신의 상대 우위의 지위를 유지하였다. 아무리 똑똑한 사람이 들어와도 정보를 공유해 주지 않으면 자신의 역량을 발휘할 수 없다.

어느 회사에서 사장님이 오라클과 데이터베이스와 독점 계약을 체결하였는데 직원들에게는 그러한 정보를 안 알려주었다고 생각해 보자. 뛰어난 엔지니어가 들어와 MySQL 데이터베이스를 활용하여 훌륭한 프로젝트를 수행하였어도 사장님께 가져가면 오라클 데이터베이스를 사용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것은 훌륭한 프로젝트가 아닌 큰 실수가 되어버린다. 그래서 그다음부터는 위에서 이야기해 준 대로만 일을 하게 된다. 사내 표준화된 방식으로만 일을 하게 되고 그렇게 되면 그의 전문성의 많은 부분은 낭비되고 말 것이다.

결국 정보를 다 개방하고 소통을 전방위적으로 하지 않으면 아무리 뛰어난 사람을 뽑아도 그저 그런 결과물이 나올 수밖에 없다. 냉장고, 반도체, TV 등을 만드는 제조업에서는 정보의 공유가 그리 중요하지 않다. 바로 설계자들이 따로 존재하고, 실제로 만드는 사람들은 설계를 그대로 따라 하면 되기 때문이다. 설계도는 아주 세밀하게 모든 부품의 위치를 정확하게 알려준다. 그런데 소프트웨어는 그러한 방식으로 하면 좋은 소프트웨어가 나올 수가 없다. 소프트웨어 최적화는 기획자가 미처 다 알 수 없는 부분이다. 기획자가 아무리 설계를 잘 한다고 해도 뛰어난 소프트웨어 엔지니어가 보면 다양한 알고리즘과 데이터 구조를 활용하여 더 빠르고 더 좋은 사용자 경험을 제공하는 최적화를 할 수가 있다.

소프트웨어 엔지니어와 UX 디자이너, 프로덕트 매니저들이 다양한 전문적 입장을 가지고 제품에 대해 최적화를 하다 보면 제품은 끊임없이 변화하고 애초의 설계는 무시되기 일쑤이다. 그러면 기획자들의 노고는 금방 허사가 되어버린다. 그러다 보니 실리콘밸리 기업에는 기획자라는 직업이 아예 없다. 엔지니어 문화에서 출발한 실리콘밸리의 프로덕트 제작의 경우 처음의 설계를 구현하지 않는다. 끊임없이 진화하는, 어디로 튈지 모르는 프로덕트를 가정하고 시작한다.

그래서 위에서 설계를 하고 아래에서 그것을 구현하는 모델로는 실리콘밸리식 소프트웨어의 발전을 도저히 따라갈 수가 없다. 게다가 그 과정이 아웃소싱을 통한다면 더더욱 그러하다. 아웃소싱 구조에서는 설계를 바꾸는 것이 너무나도 어렵다.

우리나라의 기업 문화는 제조업에 최적화되어 있고 기술도 집약되어 있다. 그래서 반도체 분야 세계 1위를 유지할 수 있다. 반면 프로덕트가 설계의 산물이 아닌 계속해서 변화하는 전문가들이 모여서 만들어가는 애자일 프로세스의 결과물인 경우 그러한 기업문화는 치명적인 약점으로 작용한다.

우리나라 대기업은 실리콘밸리를 배워야 할까?

그들은 왜 엔지니어에게 억대 연봉과 함께 자유로운 시간을 주는 걸까?

앞으로의 기술 변화에 대처하기 위해 우리나라 대기업의 실리콘밸리 배우기가 많은 공감을 얻고 있다. 그래서 많은 기업들이 실리콘밸리식 문화를 도입하였다. 사내 훌륭한 식당을 만들기도 하고 정시 퇴근을 강제하기도 하고, 복장을 자율화하기도 하였다. 벽들을 모두 없애고 오픈 스페이스 공간을 만들기도 하였다. 그리고 많은 기업들이 “우리와는 안 맞아”라는 결론을 내기도 하고 “변해 가는 과정”이라고 계속 그 방향을 추구하기도 하였다.

그렇지만 제조업 대기업이 실리콘밸리를 배워서 그 문화를 적용하는 것은 그리 효율적이지도 효과적이지도 못하다.

실리콘밸리에서 흔히 쓰이는 소프트웨어 개발 딜레마 삼각형을 보면 설계를 미리 하는 제조업 기업의 문화가 왜 낮은 품질의 소프트웨어와 야근이 잦은 업무 형태를 만들 수밖에 없는지 알 수 있다.

소프트웨어 개발 딜레마 삼각형.

위의 삼각형에서 가운데 있는 점을 속도 쪽으로 가져가면 품질과 기능에서 점점 멀어지게 된다. 가운데 있는 점을 품질에 가깝게 보내면 속도와 기능은 점점 안 좋아진다.

제조업 기업에서는 설계가 미리 이루어지기 때문에 기능들과 품질 즉 Features와 Quality는 고정되어 있다. 이미 고정된 품질과 기능의 제품을 만드는 상황에서 속도를 높이면 빨리 끝나고 속도를 낮추면 프로젝트가 더 오래 걸리는 단순한 공식이 생긴다. 그래서 기업 입장에서는 속도를 줄일 필요가 없다. 또한 이러한 프로젝트는 아웃소싱을 통해서 하나 회사 내에 엔지니어를 뽑아서 하나 큰 차이가 없게 된다.

그렇지만 품질과 기능의 진화가 어렵기 때문에 끊임없이 진화하는 현재의 소프트웨어와는 전혀 안 맞는 소프트웨어 제작 프로세스가 된다. 예를 들어 실리콘밸리 대표 기업 중 하나인 에어비앤비는 하루에도 수십 번 웹 페이지를 변화시킨다. 모든 엔지니어가 자신의 코드를 끝마치면 며칠을 기다리거나 하지 않고 바로 웹 페이지를 업데이트(디플로이)한다. 설계가 완전히 되어 있고 제작이 끝날 때까지 기다려서 몇 주에 한 번씩 업데이트하는 체제와는 개발 속도와 피드백을 수집하여 변화하는 속도가 완전히 다를 수밖에 없다.

실리콘밸리식으로 계속 진화하는 프로덕트를 만드는 일은 계속 설계가 변화하면서 품질 좋아질 수 있고 계속 기능을 변화시킬 수 있기 때문에 삼각형의 문제가 된다. 한 사람 한 사람의 엔지니어들은 시키는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세 가지 요인을 생각해야 한다. 설계를 바꾸어 품질을 좋게 할지, 기능을 더 추가하여 사용자를 만족시킬지, 시간을 단축하여 빨리 개발을 완료할지를 늘 저울질해야 한다. 품질을 증가시키면 기능이 늘어날 기회와 빨리 일을 마칠 기회를 잃게 된다. 그래서 생각을 많이 해야 하고 코딩을 하고 있지 않은 시간도 업무에 매우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

그래서 저녁이 있는 삶과 자유로운 업무 환경은 매우 중요하다. 개발자이면서 설계자이면서 제품의 품질까지 담당하는 그들이 충분한 휴식을 취해서 최상의 컨디션으로 일하지 않으면 큰 문제가 생길 수 있다. 급하게 프로젝트를 진행하다 품질과 기능이 부족한 제품이 나오면 모두에게 손해이다.

이러한 자유로운 실리콘밸리의 문화는 직원의 복지 향상을 위해 위에서 베푸는 시혜가 아니다. 오히려, 전문가의 잠재적 능력을 최대한 끌어내어 혁신을 만들어낼 수 있는 형태의 체제가 경쟁을 통해 살아남은 것이다. 전문가를 최대한 활용해서 모든 사람들이 끊임없이 혁신을 만들어 낼 수 있도록 한 체제를 만든 것이다. 전문가 한 사람 한 사람을 최대한 활용하다 보니 그들에게 많은 시간과 돈을 줄 수밖에 없는 환경이 된 것이다.

품질과 기능을 설계 과정에서 고정시켜 놓고 개발을 진행하는 기업이 이러한 문화를 무조건 수용하는 것은 회사에 손해만 끼치는 일이 된다. 제품의 품질과 기능의 설계가 소수의 사람에 의해서 결정되는 상황에서는 다수의 직원에게 자유로운 생활을 보장하는 것은 회사 입장에서 큰 리스크이다. 반면 실리콘밸리 소프트웨어 기업들이 비싼 세계적인 전문가들을 초빙해 놓고 설계권과 품질을 결정할 권리를 주지 않고, 자유로운 생각할 시간을 보장하지 않는 것은 회사 입장에서 자원 낭비이자 큰 리스크이다.

그러면 우리나라 기업 문화는 어떻게 되어야 할까?

실리콘밸리 기업의 체제는 혁신을 위한 체제이다.

우리나라 기업들이 만들어가야 하는 기업 문화는 각 회사가 무엇을 원하는 회사이냐에 따라 달라진다.

회사가 무한 경쟁의 시장 속에서 제조업을 하는 회사라면 우리나라처럼 기술과 인재를 잘 운영하는 기업들을 가진 나라가 없을 것이다. 우리의 기업 문화는 소수가 기술과 정보를 독점해서 설계하고 그 설계에 맞추어 다수의 사람들이 빠르고 정밀하게 제품을 만드는 데에 최적화되어 있다. 이러한 회사에서 열린 공간, 수평적 질서, 자유로운 출퇴근 시간을 도입하는 것은 맞지도 않고 위험한 일이 될 수도 있다.

회사가 무한 경쟁 속에서 소프트웨어를 만드는 회사라면, 즉 안드로이드 앱 같이 시장에서 경쟁이 치열한 앱을 만드는 회사라면 빠르게 기획자의 설계 → 개발자의 구현 → 피드백을 통한 개선의 사이클을 돌리는 방법도 있겠지만, 그렇게 하면 제품이 끊임없이 진화하기보다 단계별로 성장하게 된다. 이는 마치 사냥터에 나가서 한 사람은 사냥감을 눈으로 보고 쏠 시점을 결정하고, 한 사람은 시키는 때에 총을 쏘는 일만 하는 것과 같다. 그렇게 하면 효율적인 사냥이 될 리가 없다. 기획자의 설계가 아닌, 엔지니어, 디자이너, 프로덕트 매니저가 끊임없이 상호작용하면서 진화시켜나가는 애자일 방법론이 빠른 소프트웨어 진화 사이클을 제공하여 경쟁에서 우위를 점할 수 있게 할 것이다.

회사가 특정한 미션에 따라 새로운 영역을 개척하는 회사라면, 즉 혁신을 이루어가는 회사라면, 애자일 방법론에 더해 정보의 최대한의 소통이 필수적이다. 직원들이 전문가로서 매일매일 작은 결정들을 스스로 내리고 나머지 팀원들과 꾸준히 소통하는 조직이 일하는 결과물이 혁신을 가져오기 쉽기 때문이다. 모든 사람들이 어떻게 하면 내 전문 분야에서 매일매일 최고의 프로덕트를 만들지 고민하는 경우에만 혁신이 최대화될 수 있다. 위의 한 두 사람이 모든 결정권을 가진 경우에는 직원들의 잠재력을 최대한 활용할 수 없고, 전문가들이 이루는 혁신을 충분히 얻어낼 수 없다.

실리콘밸리의 기업 문화는 모든 회사에 적용되어 최대한의 효율과 직원의 행복을 보장하는 체제는 아니다. 실리콘밸리의 기업 문화는 우리나라 기업 문화가 제조업에 최적화되어 있는 것처럼 혁신을 이루어내는 소프트웨어 산업에 최적화되어 있다. 그 과정에서 직원들이 많은 연봉과 워크 라이프 밸런스를 갖게 된 것은 세상을 바꾸어가면서도 이윤을 극대화하기 위해 노력하는 실리콘밸리 체제의 좋은 부작용이라고 할 수 있다.

직업을 찾고 있는 엔지니어라면 구직 시 다음과 같은 질문을 해보면 회사 생활이 어떨지 짐작이 가능할 것 같다.

설계는 누가 합니까?

기획자가 한다고 하면 엔지니어가 줄 수 있는 가치는 “기술과 시간” 밖에 없다. 엔지니어와 디자이너와 프로덕트 매니저가 함께 한다고 하면 엔지니어가 줄 수 있는 가치는 “내가 기여할 수 있는 모든 것”이 된다. 따라서 당신의 가치, 연봉, 자유 시간도 함께 올라갈 것이다.

 

글: Will. 소프트웨어 엔지니어. 기업 문화와 조직에 관심이 많음.
그림: Chili. 디자이너. 생각을 그림으로 요약하는데 관심이 많음.

Comments

6명의 실리콘밸리의 일상을 살아가는 친구들이 모여 실리콘밸리를 생각해보고 글로 써보고 그림으로 그려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