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 내가 굳이 실리콘 밸리로 이직할 필요가 있을까?

[실리콘밸리를 그리다] (37) 내가 굳이 실리콘 밸리로 이직할 필요가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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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리콘밸리를 그리다 팀이 브런치에 게재한 글을 편집한 뒤 모비인사이드에서 한 번 더 소개합니다

한국에서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로 일하고 있는 친한 친구와의 전화 통화 내용을 정리해 보았다.

“한국에서 평균 이상의 임금을 받고 근로시간도 주 50~60시간 정도라면 그냥 한국에서 행복하게 지내도 되지 않아? 미국에 온다고 네가 엄청 행복해지는 것도 아니잖아. 새로운 곳을 가면 그만큼 위험과 불편함도 감수해야 하니까.”

“그렇지. 지난 몇 년간 IT업계의 근무환경이 많이 좋아졌고, 앞으로도 더 나아진다면 한국에 있는 것도 괜찮다고 생각해. 하지만 현재 연봉에서 물가 상승률보다 그다지 더 많이 오를 것 같지도 않고, 나이가 들어서도 개발자로 계속 일할 수 있을지 모르겠어.”

Q) 이민 와서 사는 사람들 이야기 들어보면 미국 생활 힘들다고 하던데 그렇진 않아?
우리 부모님 세대에 오신 많은 이민 1세대들은 한국에서 중산층이었다가 여기 와서 자영업 하면서 미국의 서민 생활을 겪은 사람들이 많아. 그래서 미국 생활이 힘들다는 이야기도 많이 하는 거고. 아마 이민 1세대들도 와서 중산층의 삶을 누렸다면 다르게 이야기했을 것 같아.

생각해보면 너나 나나 외국에 이민 가거나 유학 갔다는 사람 주변에 1도 없잖아. 나도 대학교 서울로 가서나 그런 사람들 만나봤다. 지금이야 어학연수도 많이 다녀오지만, 우리는 어학연수 갈 형편이 안돼서 생각조차 안 해 봤잖아. 미국을 가려고 해도 어떤 루트로 가면 되는지 아는 사람들이 가는 거지. 나는 한국에서 서민으로 살다가 미국에 와서 중산층에 진입한 케이스라 두 나라에서의 생활을 공정히 비교/대조하기가 어렵네. 하지만, 나의 미국 중산층의 삶은 행복해.

너는 한국 중산층에서 취직을 통해서 미국 중산층에 진입하려는 거니까, 그걸 전제로 이야기하자면 장단점은 있겠지만 한국보다는 네 생활 형편이 더 나아질 가능성이 높아.

Q) 인종 차별이 있진 않아?
난 미국에서 8년 동안 생활하는 동안 한 번도 인종 차별을 겪어본 적이 없어. 인종 때문에 불이익을 당하는 일은 거의 없고 오히려 테크 업계에서는 아시아인들이 주류에 가까워. 같이 일하는 동료들도 다 이민자 출신이기도 하고, 중국분들이 많아서 겉으로 봐서는 그냥 중국인으로 묻어가는 것도 있고, 내가 중국인이 아니니 누가 나에게 니하오 하고 놀려도 별로 반감은 안 들고.

내가 지방 대학 출신이라서 혹은 스카이 대학을 나오지 않아서 한국에서 당할 차별보다 실리콘 밸리에서 겪을 인종 차별이 훨씬 적을 것 같네.

Q) H1B 비자받고 오면 비자 문제 때문에 회사 옮기기 어렵지 않아?
H1B를 한 번 받고 나면 옮기기 어렵지 않아. 처음 신청할 때 lottery라고 널 고용하려는 회사가 스폰서를 해줘도 정부에서 하는 확률게임에 참여를 해야 돼서 처음이 어렵고, 그다음부터는 법적 절차가 어렵지 않아서 H1B로 회사를 옮기는 건 그다지 불편함이 없어. 대기업이든 중소기업이든 다 잘 받아줘. 다만 한국에서 H1B 비자를 받는 것이 쉽지 않아.

Q) 난 한국에 사니까 미국 회사들이 어디가 좋은지 잘 모르잖아. 한국에는 잡플래닛 같은 사이트가 있거든. 회사 문화도 좀 알고 싶은데 미국에도 그런 사이트가 있어?
물론 있지. glassdoor.com 가면 회사 평이랑 직군별 임금이 적혀 있고, paysa.com에는 임금 통계와 필요한 기술들을 조금 더 자세히 적어놓았어. 앞의 사이트는 임금 통계가 전체적으로 현재 시장 상황보다 낮은 편이고, 뒤의 사이트는 어째서인지 조금 더 높게 기술해놓은 것 같아. 이런 전체 임금 통계가 네게 큰 의미가 있는 진 잘 모르겠어.

넌 해외에서 미국으로 취직을 하는 거니까 시장이 조금 다른 것 같아. 위의 웹사이트에 나온 통계와 실제로 네가 제시받을 연봉 사이에는 차이가 있을 수도 있다고 생각해. 앞으로 중장기적으로 네가 받을 수 있는 연봉을 보여준다고 생각하면 되지.

 

Glassdoor의 샌프란시스코 소프트웨어 엔지니어 연봉 통계. 1년 평균 1억 5천의 기본급을 받는다고 나와 있다.

 

Q) 실리콘 밸리는 초봉이 1억부터 시작한다고 하던데 사실이야?
응. 최소 1억은 주지. 그리고 거기서부터 쭉쭉 올라가.

Q) 초봉 1억에서 시작해서 한 10년 차 개발자가 되면 5억 정도 받냐?
한국은 연차가 굉장히 중요하다고 들었어. 인사 고과도 승진자에게 몰아주고. 미국은 처음 취직해서 승진 한 번할 때까지 3년이 넘게 걸리는 경우도 있고, 반년만에 승진하는 경우도 있어서 10년 차 개발자라는 게 큰 의미는 없는 것 같고, 경력직의 잘하는 개발자라면 근래에는 연봉이 3억에서 5억 사이에 형성되는 것 같아. 지난 몇 년 사이에 경력직의 임금이 많이 오른 것 같아. 실리콘 밸리가 흥하면서 개발자의 수요가 늘어나기도 했고, 오픈 소스가 많이 생겨서 개발자 한 명의 역량이 커지기도 했어.

Q) 미국 회사들은 왜 이렇게 코딩 인터뷰를 힘들게 봐?
진짜 일을 할 수 있는 사람인지 검증해야 하니까. 세계에서 다양한 사람들이 모인 만큼 그들의 경험도 다양해서 이력서만으로는 실력을 짐작하기가 어렵고, 비슷한 배경의 사람들끼리 서로 고용하는 편향성을 (bias) 줄이려는 노력 중의 하나지. 미대 나온 친구가 엔지니어로 지원해서 코딩 인터뷰 패스해서 엔지니어가 된 적도 있었어. 엔지니어들 전공도 다양하고.

영어가 유창하지 않은 경우에는 실력을 인터뷰에서 보여주기에 오히려 더 유리한 것 같아. 만약 인터뷰어가 예전 프로젝트에 대해 심도 있는 질문을 한다면 영어로 설명하기는 어렵잖아. 코딩 인터뷰만 너무 중점적으로 하는 건 지원자의 제한된 역량만 보는 것 같다는 비판들이 있어서 회사들도 다른 면접 방법들도 모색해보고 있어 (예를 들면, top grading). 하지만 어떤 회사가 코딩 인터뷰를 중점적으로 본다면 그건 한국에서 미국으로 바로 지원하는 네게 오히려 기회라고 생각해.

Q) 영어는 어느 정도 잘해야 돼?
인터뷰 통과할 정도로만 잘하면 되지. 아래 비디오를 보면 인터뷰에서 어떤 영어를 쓰는지 알 수 있어. 코딩은 만국 공통 언어이니 실제로 일할 때는 영어가 엄청 유창하지 않아도 되거든. 프로그래밍 짱짱 잘하면 다들 이해할 거야. 일하면 필요하니까 영어가 빨리 늘기도 하고. 현지가 아닌 곳에서 외국어를 익히는 건 참 어려운 일인 것 같아.

구글의 코딩 인터뷰 예시. 어색한 연기가 현실감을 더한다.

 

Q) 우리 회사는 좋은 게 회식비가 무제한이거든. 비싼 소고기 엄청 많이 먹을 수 있어. 너희도 회식 같은 거 시켜주냐?
ㅋㅋㅋ 회식은 분기당 한 명당 $120 정도씩 예산이 있는데, 그것보다는 집에서 비싼 소고기를 엄청 많이 먹을 수 있는 연봉을 줘. 소고기 값이 상대적으로 한국보다 싼 것도 장점. 회사 사람들하고 회식하는 거 보다는 가족이나 친구랑 맛있는 거 많이 먹는 게 좋지 뭐. 예산으로 회식을 하는 팀도 있고, 말타기/페인트볼/와인 테이스팅 등 각자 팀에서 하고 싶은 거 하러 가. 회식 혹은 팀 이벤트는 언제나 근무시간에 일어나고 우린 놀면서 돈을 받지.

Q) 휴가는 많아?
예전 마이크로소프트에서 일할 때는 1년 차일 때 1년에 business day로 15일 나왔었는데 나중에는 20일로 늘었지. 한 해에 안 쓰면 그다음 해로 넘어가고 한꺼번에 몰아서 써도 돼. 난 보통 3주씩 몰아서 썼어. 퇴사할 때 휴가가 남았는데 시간이 없어서 못 쓰고 나왔네. 나중에 그 남은 휴가 시간만큼 근무시간으로 환산해서 수표 보내주더라.

지금 트위터에서는 휴가가 무제한이야. 휴가가 무제한이라 팀에게 통보 후 아무 때나 갈 수 있지만 퇴사해도 남은 휴가를 돈으로는 못 받아.

Q) 미국 의료 보험 비싸다며?
미국 의료 보험은 살벌하게 비싸지. 그런데 네가 걱정할 필요는 없어. 넌 미국 회사에 취직해서 올 테고, 미국 회사가 네 의료보험을 들어주거든. 그리고 한국 의료보험처럼 개인이 부담해야 하는 부분이 소량 있는데 그 비용을 세금을 제하지 않은 돈으로 내. 그리고 개인 의료 보험을 들어도 그렇게 비싸지 않아. 의료 보험을 안 들어주는 대신 돈으로 주는 회사가 있는데 (나이가 젊은 친구들은 그게 더 이득이지), 1년에 천만 원 정도 준다고 하더라고. 그 돈으로 네가 원하는 보험 넣으면 돼.

마지막으로 네가 어디에서 살던 행복했으면 좋겠다. 난 인권과 다양성이 존중되는 사회에서 법과 질서를 지키며 꾸준히 배워나가는 삶을 살고 싶어.

객원 저자 Steven Yoo

Staff Software Engineer at Twitter

https://www.linkedin.com/in/anoia7/

그림: Chili. 디자이너. 생각을 그림으로 요약하는데 관심이 많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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